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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법제 3법의 일본국회통과에 대해 ―지구상의 모든 곳에 평화의 소리를 높이자.

中西 治

2003년6월 6일, 일본의 국회는 유사법제 3법을 성립시켰습니다. 1977년 8월 당시, 후쿠다 카케오 자민당내각이 일미방위협력소위원회의 협의에 입각해 공식으로 유사입법의 연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4반세기를 거쳐 자민당은 그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유사입법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자위대를 국외에 파견, 아메리카군과 함께 싸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후쿠다 카케오수상을 정치의 스승으로 우러러 보는 고이즈미수상과 원수상의 아들인 후쿠다 카케오의 내각에 있어서 이것이 실현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스승과 아버지의 정치적유언을 실현한것입니다.

세계 제 2차 대전에 의해 전쟁의 참전을 체험한 일본은, 일본군이 또 다시 외국에 나가, 그 곳의 사람들을 죽이지 않는 일을 맹세하고 무력을 포기했으며, 전체적인 분쟁문제를 평화적인 대화을 통해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일본국헌법의 정신이자 제 9조의 규정입니다.

일본은 식료있어서도, 또 석유, 천연가스에 있어서도 많은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물론, 평화의 테두리속에서 밖에 살아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일본은 전쟁하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일본인의 다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 전쟁을 전제하는 유사입법을 오랫동안 거부해 왔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가면서 정세는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1월의 제 1차 타이완 전쟁의 흔적으로, 자유대의 청해선이 페르샤만에 출동하고 1992년 6월에는 국연평화유지활동협력법이 성립되었습니다. 2002년 12월에는 이지즈함이 인도해에 출동하고, 이어 유사법제3법이 채택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어 버렸는가. 제 1의 이유는 1990년 8월 2일에 이라크에 의한 쿠웨이트 진공이후전쟁이 빈발하고, 많은 일본인이 전쟁의 위험을 가깝게 느낄수 있도록 되었기 때문입니다.1991년 1월의 제 1차 타이완전쟁, 1998년12월의 제 2차 타이완전쟁, 1999년3월의 코스보전쟁, 2001년 9월11일의 사건에 이어, 같은 해 10월의 아프가니스탄의 타리반정권에 대한 전쟁, 2003년 3월의 이라크의 후세인정권에 대한 전쟁등입니다.

제2의 이유는 전쟁에 대한 일본인의 의식의 변화입니다.일찍이 전쟁은 제 1차 대전, 제 2차 대전, 한국전쟁,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같은 장기간에 걸친 지상전을 수반하는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 지금의 전쟁은 제 1차 타이완 전쟁이래 하이테크 기술을 구사하는 단기간의 텔레비전게임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죄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잔혹하게 죽음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4월에 유사법제3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을 때, 일본인은 그 성립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겨우 1년후의 지금, 이 법안은 여당뿐만아니라 야당의 다수의 의원도 포함한 찬성에 의해 중의원, 참의원 양원을 통과했습니다. 여기에는 2002년 9월의 일조 평양선언이후 명확해진 납치라는 불길한 사건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일본과 조선 한반도 사이에는 옛부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양지역의 관계는 각각의 지역의 사람들의 생활과 평화, 안전에 큰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양지역간에는 도쿠가와막부체제아래의 쇄국의 시대에는 유호적인 교류가 있었습니다. 근현대에 있어서의 그 불행한 관계는 일본이 1910년 8월에 일한 병합조약에 의해 한국을 식민지화하고,그 지역을 조선이라고 칭하게 된 때에 시작되었습니다.일본에 의해 중국에의 침략전쟁이 확대되어가는 속에 1939년 7월에 히라누마키이치로우내각은 조선인노동자내지이주에 관한 건을 통첩하고, 조선인을 강제적으로 일본에 연행했습니다.그 수는 일본에 의해 식민지지배가 끝나는 1945년8월까지의 약 150만인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불행한 역사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일을 최근의 일어날 일이 다시금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인이 먼저 그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솔직하고 겸허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상대방이 나쁘기때문에 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도 그 나쁜일을 한다면 똑같이 나쁜사람입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도 납치에 대해 겸허히 반성해야합니다.핵무장등은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그 지역의 긴장을 높게 하는 것 뿐입니다. 고이즈미 내각은 일본인의 안에 퍼져가고 있는 동국에 대한 의심과 반감과 비난을 계략적으로 이용하면서 25년이래의 과제를 완수했습니다.

일본은 전쟁을 하지 않는 국가에서 전쟁을 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일본국의 질은 변했습니다. 다음은 헌법개정이 구체적인 정치일정에 다루워지는 일일것입니다. 전쟁을 전제로 한 생각, 전쟁에 대비하게 되는 때, 전쟁은 바로 가깝게 와 있는 것입니다. 쌍방이 전쟁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에 전쟁은 일어납니다. 이미 선제공격에 관하여 조차 논의 되고 있습니다.

1938년 4월의 국가총동원법의 공포가 상기되었습니다. 그로 부터 1941년 12월8일에 진주만공격까지 겨우 3년 8개월 남짓입니다. 만약, 똑같은 일을 겪는 일이 되면 또다시 많은 인명을 잃어버리고 일본은 폐허화될 것입니다.이번의 유사법제3법에 찬성한 사람들의 책임은 극히 중대합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우리들은 전쟁의 논리에 말려들어서는 안됩니다.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까가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까에 대해 생각해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연구소는 모두 중한인민공화국,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러시아 연맹, 아메리카합중국등의 뜻을 같이한 사람들과 협력해 지구상의 평화, 특히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기위해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연구소는 강력한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메일igcp@mlc.nifty.com과 홈페이지http://www.igcpeace.org/입니다. 그 도구를 유효하게 사용해,평화의 소리를 백, 천 만 억의 사람들에게 알려갈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곳에 평화의 소리를 높여갈 것입니다.정의는 전쟁의 측면이 아니라 평화의 측면에 있습니다.평화를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 협력해 연대를 맺는 다면, 정의는 반드시 실현됩니다.평화는 반드시 확보됩니다.우리들의 연구소는 그것을 위해 만들어 진 것입니다.

韓 智姫(ハン ジヒ)訳

有事法制3法の日本国会通過にあたって ―地球上のすべてのところで平和の声を高めよう―

中西 治

2003年6月6日に日本の国会は有事法制3法を成立させました。1977年8月に時の福田赳夫自民党内閣が日米防衛協力小委員会の協議に基づいて公式に有事立法の研究を始めてから四半世紀を経て自民党はやっとその目的を達しました。有事立法がめざしたものは日本の自衛隊を国外に派遣し、アメリカ軍とともに戦わせることです。福田赳夫元首相を政治の師と仰ぐ小泉首相と元首相の子息である福田官房長官の内閣においてこれが実現したことは偶然ではありません。彼らは師と父の政治的遺言を実現したのです。

第二次大戦によって戦争の惨禍を体験した日本は日本の軍人がふたたび外国に出て、その地の人々を殺し傷つけないことを誓い、武力を放棄し、すべての紛争問題を平和的な話し合いによって解決することにしました。これが日本国憲法の精神であり、第九条の規定です。

日本は食料にしても石油・天然ガスにしてもその多くを外国に依存しており、平和のもとでしか生きられません。日本は戦争のもとでは生きられません。日本人の多くはそのことを良く知っており、戦争を前提とする有事立法を久しい間拒否してきました。

1990年代に入って情勢が急速に変わり始めました。1991年1月の第一次湾岸戦争のあとに自衛隊の掃海艇がペルシャ湾に出動し、1992年6月には国連平和維持活動協力法が成立しました。さらに1999年5月には周辺事態法、2001年10月にはテロ対策特別措置法が成立しました。2002年12月にはイージス艦がインド洋に出動し、ついに有事法制3法の採択となりました。

どうしてこのようになったのでしょうか。第一は1990年8月2日のイラクによるクウェート進攻以降戦争が頻発し、多くの日本人が戦争の危険を身近に感じるようになったからです。1991年1月の第一次湾岸戦争、1998年12月の第二次湾岸戦争、1999年3月のコソボ戦争、2001年9月11日の事件に続く同年10月のアフガニスタンのタリバン政権に対する戦争、2003年3月のイラクのフセイン政権に対する戦争などです。

第二は戦争に対する日本人の意識の変化です。かつて戦争は第一次大戦、第二次大戦、朝鮮戦争、ベトナム戦争、アフガニスタン戦争などのような長期にわたる地上戦をともなう悲惨なものでした。しかし、いまでは戦争は第一次湾岸戦争以来ハイテク技術を駆使した短期のテレビゲームのようなものになっています。そこでは罪のない多数の人々が残虐に殺されていることが見えてきません。

それでも2002年4月に有事法制3法案が国会に上程されたときには日本人はその成立を許しませんでした。しかし、それからわずか1年後の今回はこれらの法案は与党だけではなく、野党の多数の議員も含む賛成によって衆参両院を通過しました。これには2002年9月の日朝平壌宣言以後に明らかになった拉致という忌わしい出来事が大きな影響を与えています。

日本と朝鮮・韓半島との間には古来密接な関係があります。両地域の関係はそれぞれの地域の人々の生活と平和と安全に大きな影響を与えてきました。両地域の間には徳川幕藩体制下の鎖国の時代にも友好的な交流がありました。近現代における不幸な関係は日本が1910(明治43)年8月に日韓併合条約によって韓国を植民地化し、この地域を朝鮮と称するようになったときに始まりました。日本による中国への侵略戦争が拡大するなか1939(昭和14)年7月に時の平沼騏一郎内閣は「朝鮮人労働者内地移住に関する件」を通牒し、朝鮮人を強制的に日本に連行しました。その数は日本による植民地支配が終わる1945(昭和20)年8月までにおよそ150万人に及んだと言われています。

この不幸な歴史がまだ完全に終わっていないことを最近の出来事は改めて明らかにしました。日本人がまずこの過去の植民地支配に対して率直に謙虚に反省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しかし、相手が悪いからといって自分も悪いことをすれば同じく悪い人です。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も拉致について謙虚に反省すべきです。核武装などはすべきではありません。この地域の緊張を高めるだけです。小泉内閣は日本人のなかに広がっている同国に対する疑念と反感と非難を巧みに利用しながら25年来の課題を果たしました。

日本は戦争をしない国から戦争をする国になりました。日本国の質が変わりました。つぎは憲法改定が具体的な政治日程に上ることでしょう。戦争を前提として考え、戦争に備えるようになったとき戦争はすぐ側まで来ています。双方が戦争に備え始めたときに戦争は起こります。すでに先制攻撃についてさえ論議されています。

1938(昭和13)年4月の国家総動員法の公布が思い起こされます。それから1941(昭和16)年12月8日のパールハーバー(真珠湾)攻撃までわずかに3年8か月余りでした。もしも、同じような道を歩むことになれば、ふたたび多くの人命が失われ、日本は廃虚に化するでしょう。今回の有事法制3法に賛成した人々の責任はきわめて重大です。

どのように対処すべきでしょうか。私たちは戦争の論理に巻き込まれてはなりません。戦争が起こればどうするのかではなく、戦争が起こる原因を取り除くためにはどうするのかについて考えるべきです。私たちの研究所はすでに中華人民共和国、大韓民国、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ロシア連邦、アメリカ合衆国などの志を同じくする人々と協力して地球上の平和、とくに東アジアの平和と繁栄を確保するために具体的な活動を始めています。

私たちの研究所は強力な道具を持っています。メーリングリスト (igcp@mlc.nifty.com) とホームページ (http://www.igcpeace.org/) です。この道具を有効に使い、平和の声を百、千、万、億の人々に広げていきましょう。地球上のすべてのところで平和の声を高めましょう。正義は戦争の側ではなく、平和の側にあります。平和を大切にする人々が協力し連帯するならば、正義はかならず実現します。平和はかならず確保されます。私たちの研究所はそのために作られたのです。